"45년 목회 여정은 '평안'… 산전수전 겪었지만 다시 목회해도 삼척으로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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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목회 여정은 '평안'… 산전수전 겪었지만 다시 목회해도 삼척으로 올 것"

강원영동CBS 이기원의 크리스천Q(제작 최진성 아나운서, 진행 이기원 목사)

[삼척제일감리교회 박신진 담임목사 인터뷰]
"태어난 날 아버지가 설교했던 고향 교회로"
"지역 교회 사회적 현안에 균형 잡힌 목소리 내야"

강원영동CBS 이기원의 크리스천Q에 출연한 삼척제일감리교회 박신진 담임목사(오른쪽). 최진성 아나운서강원영동CBS 이기원의 크리스천Q에 출연한 삼척제일감리교회 박신진 담임목사(오른쪽). 최진성 아나운서◇ 이기원> 삼척 제일감리교회를 섬기고 계신 박신진 목사님 모셨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 박신진> 안녕하십니까? 삼척 제일교회 박신진 목사입니다.
 
◇ 이기원> 은퇴를 앞두고 계신다고 하는데 은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십니다. 먼저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신진> 이제 정말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삼척 제일교회 박신진 목사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기원> 그동안 강원영동CBS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셔왔는데 오늘 이 자리는 좀 특별합니다. 내년 목회 은퇴를 앞두고 모시게 됐는데요. 기분이 어떤지 한번 듣고 싶습니다.
 
◆ 박신진> 내년 그러니까 2027년 4월에 감리교회 목회 여정 45년을 마치게 됩니다. 이런 날이 오네요.
 
◇ 이기원> 27년이요.
 
◆ 박신진> 예. 이럴 줄 몰랐는데 작년 말부터 은퇴를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다 보니 기대나 아쉬움보다는 당장 은퇴한 날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게 참 당황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직의 멍에를 내려놓고 조금 자유롭게 될까 하는 그런 기대도 있습니다.
 
◇ 이기원> 목회 45년. 사람으로 치면 50을 바라보는 나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인데 어떻습니까? 한번 이렇게 한번 제안드리고 싶은데 목회 45년을 돌아보시면서 혹시 한 단어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로, 뭐라고 혹시 하실 수 있을까요?
 
◆ 박신진> 글쎄요. 그래도 평안하게 지나온 45년이 아니었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서 평안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기원> 삼척제일교회 박진진 목사님의 45년 목회는 평안. 감동이네요. 혹시 가장 먼저 그 드는 마음이 은퇴를 앞두고 드시는 마음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기대가 더 크신지 혹시 아쉬움이 더 크신지 어떻습니까?
 
◆ 박신진> 물론 기대도 있습니다만 아쉬움이 큽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열심히 또 집중해서 했더라면 아마 좀 더 나은 열매들을 많이 거둘 수 있는 게 이 위치인데 좀 아쉽구나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 이기원> 아쉬움은 잠시 후에 더 자세하게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한 페이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인데요. 먼저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처음 그 부르심의 순간을 한번 들려주시겠습니까?
 
◆ 박신진> 저는 목회를 시작한 걸 얘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얘기를 잠깐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저희 아버지는 4남매 중 맏이었는데 가족들이 살기가 어려워서 식구를 줄이자고 하여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외가댁으로 가셔서 생활하게 되셨습니다. 말하자면 더부살이를 하신 거죠. 그런데 그곳 교회 청년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6·25가 일어나니 교회 청년 한 10명가량이 전도사님을 모시고 진남포 바닷가로 나와서 제주도 가는 바지선을 타고 함께 피난했어요. 교회 청년들과 함께 피난한 겁니다. 그중에 4~5명 정도가 당시 부산 피난 시절에 고려신학교를 들어가서 공부했습니다. 제가 그 아버님 교회 친구분들을 나중까지도 만나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신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경기도로 올라와서 비어 있던 감리교회의 담임 전도사로 저희 아버님이 파송되어 목회를 시작하셨고요. 두 번째로 감리교의 파송을 받아 가신 교회가 바로 삼척 정라진이었고요.
 
◇ 이기원> 정라진 교회.
 
◆ 박신진> 지금은 없어진 교회입니다. 저는 그 정라진에서 태어났습니다.
 
◇ 이기원> 아버지께서 평안도로 더부살이 가셨다가 거기서 6·25가 나고 그래서 제주도로 가시려고 그랬죠. 그런데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셔서 목회자의 길을 가셨다.
 
◆ 박신진> 네. 제주도 애월이라는 데서 좀 사셨고요.
 
◇ 이기원> 아 그렇군요.
 
◆ 박신진> 그 그룹이 부산으로 와 있다가 함께 온 분들 중 절반이 신학교를 가신 거죠.
 
◇ 이기원>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신 거죠. 신학을 하시게 된 게.
 
◆ 박신진> 그러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하나님께 나를 바치셨어요.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래서 당신들은 그런 정규 교육을 밟지 못한 아쉬움이 있으니 아들이 제대로 준비된 목회자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 제 의견과 무관하게 하나님께 목회 소원을 하신 것이죠.
 
◇ 이기원> 이삭처럼 바쳐지셨군요.
 
◆ 박신진> 예예. 그래서 이제 엉겁결에 어떻게 보면 신학교를 갔고요. 그 과정에서 신학교 2학년 때 신학교에서 어떤 집회 말씀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예언자로 부르신다는 그런 소명을 가지게 돼서 목회가 시작된 것이죠.
 
◇ 이기원> 목사님이 신학하실 때 45년 전, 50년 전 때는 정말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울 때였던 것 같은데 목회도 그만큼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박신진> 그때는 목회 나갈 때 으레 가난하게 목회할 걸로 다 보기 때문에 얼마 생활비를 주느냐, 사례비가 얼마냐 이런 거 물어보지 않고요. 그냥 정말 그저 교회가 있으면 그곳이 일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 이기원> 혹시 아버지께서도 목사님께서 목사 안수 받아서 가실 때 살아계셨었나요?
 
◆ 박신진> 그럼요. 눈물로 기도하면서 디모데가 어리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목회하는 자가 된다는 그 본문을 읽어주시면서 보내셨어요.
 
삼척제일감리교회 전경.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삼척제일감리교회 전경.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 이기원> 근데 피눈물 나는 스토리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목회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본인이 걸어오셨는데 또 아들이 그 길을 간다니까. 하나님의 소명조차 막을 수는 없고 기쁨과 그렇다고 뭐 감사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은혜가 두 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박신진> 저는 이웃 마을에 여행 가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목회를 출발했는데 아버지는 울면서 보내셨죠.
 
◇ 이기원> 충분히 우리가 이해가 됩니다. 아버님 마음이. 목회 초년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크게 달라진 목회 환경, 목사님 보시기에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박신진> 단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의 영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의 생활이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큰 교회, 작은 교회 사이의 차별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교회와 목회자 사이에 빈부 대소 차이의 문제가 해결돼야 할 그런 지금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로 목회자들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아주 혼란스러워하고 또 우리 후배들이 힘을 잃은 것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예, 맞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통계 자료를 보니까요. 개척교회나 소형교회 성도들이 중대형 교회로 많이 이전해서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졌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거든요.
 
◆ 박신진> 저도 본 것 같습니다.
 
◇ 이기원> 그러니까 지역에 있는 큰 교회들이 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윈윈(win win),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박신진> 그러니까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섬기는 것은 훗날 큰 교회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 이기원> 예. 목사님께서 아마 그렇게 45년을 잘 실천해 오셨을 거라고 저는 또 믿습니다.
 
◆ 박신진> 관심은 가졌던 것 같습니다.
 
◇ 이기원> 잘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강원도 우리 삼척 출신이시죠? 사역은 원주에서 먼저 시작하셨는데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삼척 제일교회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목회한 삼척 제일교회와 삼척이라는 지역, 목사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 박신진> 저는 강원도 삼척 정라진에서 그 육향산이라는 산 아래에 있는 여관 옆에 있는 작은 목사관에서 1957년 2월에 태어났는데요. 태어난 날 정라진교회 전도사였던 아버지가 사정이 생겨서 담임 목사가 한 주 비운 삼척교회에서 설교를 하셨어요. 이웃 교회 목사님이 설교 좀 하라고 그래서요.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왜 하필 이런 날 아기를 낳느냐"고 했던 것을 어머니가 기억하고 섭섭해 했답니다. 하하(웃음). 그곳에 53년이 지나서 그때 태어난 아기가 담임 목사로 부임한 겁니다. 삼척 제일교회는 제 출신 교회는 아니지만 고향 교회이고 제 모든 삶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교회였던 거죠.
 
◇ 이기원>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데요.
 
◆ 박신진> 예.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가 태어난 날 우리 아버님이 전도사로서 이웃 교회를 거기서 설교했는데 그 교회가 제가 나중에 이제 부임한 교회가 됐죠.
 
◇ 이기원> 정말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을 것 같네요. 저도 좀 찔리는 게 있습니다. 목사님 뭐냐하면 저는 신학을 좀 늦게 했는데 첫 애가 태어날 때 제가 중간고사여서 시험 보러 가야만 했어요. 수업이면 빠지겠는데 시험이라 빠질 수 없는데 이게 평생 제가 참 한이 되는 부분 같아요. 근데 목사님도 사연이 너무 특별한 것 같네요. 20년 가까이 목회한 삼척 제일교회. 특별히 목사님께서 삼척이 고향이신데 삼척에서 오셔서 목회를 마치신 것 같아요. 목사님이 보시기에 삼척이라는 도시 혹시 청취자들에게 삼척은 이런 곳입니다. 한번 소개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 박신진> 삼척은 어떻게 보면 지금은 서울 중심의 사회, 나라가 되어 버렸는데 이제 지방 시대 얘기하잖아요. 지방이 중요하다, 또 지방을 살려야 한다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얘기할 때 가장 모범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도시가 삼척이라고 봐요. 오랜 전통을 지닌 예향이고 그리고 또 삼척 사람들이 나름 자존심도 많이 가지고 있고 한때는 산업화의 주역이 되는 도시로서 아주 이곳이 나름대로의 색깔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삼척이 어떻게 보면 지방 도시가 사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데 있어서 교회가 역할을 상당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사실은 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목사님. 20년 동안 삼척에 계시면서 삼척 기독교 교계 자랑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 박신진> 복음화율이 5% 정도 내외이기 때문에 그게 좀 아쉽고요. 그러나 아주 아기자기하게 마치 형제들처럼 목회자들도 잘 협력을 하고 그리고 교회들이 안정되게 잘 서가는 그런 지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기원> 저도 (강원도에)온 지 한 3년 됐지만 듣는 이야기가 삼척, 아까 아기자기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삼척의 기독교 분위기, 교회 분위기가 서로서로 돕고 섬기는 건 좋은 분위기가 있는 곳이 삼척이라고 들어서 그래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삼척 제일감리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시면서 가장 감사했던 순간, 또는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 어떤 건지 한번 소개해 주십시오.
 
◆ 박신진> 저도 좀 생각해 봤는데요. 코로나 사태를 잘 넘겼던 것이 아마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생애에도 처음으로 예배를 멈추기까지 했기 때문에 상당히 도전이 되었던 그런 기간이었습니다. 2019년 말부터 퍼지기 시작하여 2021년에는 모든 교회가 공예배를 잠깐 멈추기까지 한 적이 있었고, 2023년에야 집회 제한이 풀렸잖아요. 공예배를 멈춘 주일에 제가 그 설교를 어떻게 시작했나 적어와 봤어요.
 
◇ 이기원> 어떻게 하셨습니까?
 
◆ 박신진>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은 사상 유례없는 주일이다. 아마 우리 교회 108년 역사에 처음으로 전염병 때문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고 각자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경우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재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그 후에 와서 재물을 드리라고 가르치셨다. 신앙인에게는 거룩한 의무와 함께 화해와 인간화의 사명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런 주님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전염병이라는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기 위해 다중집회의 걸음을 멈추어 서로를 지켜주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이오. 그러고 나서 예배에 더욱 집중함이 옳은 길이라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제가 앞에 설교를 시작했는데요. 교회가 지역사회의 고통에 동참하여 스스로 40일 선박 검역을 위한 통제 기간인 <퀘렌틴>을 선포하고 일시적으로 예배드릴 권리를 내려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예배 못 드린 3주간의 주일과 거리 두기를 계속한 3년의 시간은 정말 불편했지만 지역과 나라를 살리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동참의 시간이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드디어 교회와 나라는 긴 코로나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해 냈는데 교회가 거기에 동참한 것은 의미 있었다 저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코로나19 시기 예배 모습.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코로나19 시기 예배 모습.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 이기원> 목사님의 표현 중에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기 위해서 다중 집회의 걸음을 멈췄다는 것이 정말 너무 감동으로 다가오네요. 그러니까 이렇게 코로나를 지금 강도 만난 이웃과 연결시켜서 한다는 이 생각이 저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하지만 반드시 실천해야 될 이웃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목사님은 삼척에 20년 계시면서 혹시 새 가족이나 이런 분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혹시 있습니까? 전도가 되셨던 분들 중에 혹시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 박신진> 새 가족이라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교우였는데요. 처음에는 새벽 기도를 참석하고 뒷자리에 가끔씩 오고 그래서 아마 이 지역에 무슨 사업차 와 계시는 그런 분이 본 교회에 못 가니까 예배에 참여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분이 꾸준히 참여만 하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우리 교인이 됐어요. 알고 보니까 다른 교회에서 장로님이 되셨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적응을 잘하고 그리고 교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셔서 역할을 크게 하시고 계신 그런 분이 계십니다. 아마 그런 분들이 가끔씩 이름 없이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교회 일원이 되는 이런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기원> 직분 내려놓고 교회 경험 내려놓고.
 
◆ 박신진> 그래서 직분이 뭐냐 그러니까 성도라고 그러고요. 하하(웃음). 이렇게 이제 오셨던 분들이.
 
◇ 이기원> 그렇군요. 참 감동적이네요. 반대로 목회 여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나 신앙적으로 크게 붙들림을 받았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다시 일어서게 한 그런 힘은 그때 무엇이었습니까?
 
◆ 박신진> 예. 제가 우리 집사람하고 또 누가 물어볼 때 그런 얘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이런 말을 하는데요. 제가 얘기를 꺼내야 할까 인터뷰 전에 고민하고 기도했는데 제일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7년 전에 함께 있던 부목사 1명이 교회 사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었습니다. 한번 얘기해 보는 게 좋겠다. 은퇴 하는 마당에 그런 생각을 해서 지금 말씀드리는데요. 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우선 병원 옆에 장례식장이 있듯이 복음 생명을 전하는 교회에도 끔찍한 비극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때 새삼 느꼈습니다. 다른 교회의 문제나 비극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비평하지 말아야 하고 이 일 터지면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많이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좀 돌아가 보려고 뭐 그 사인(死因)도 부드럽게 얘기하고 해봤는데 나중에는 결국은 정직하게 내어놓고 교회가 울면서 함께 이 문제를 다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정말 살아있는 한 서로 적극적으로 좀 돌봐줘야 한다 그걸 제가 아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때 젊은이들이 유행했던 말이 '지못미'였어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수학여행단이 죽었을 때에도 그런 말이 많이 있었죠. 우리 부목사 경우에 여러 해 동안 사실은 부끄럽습니다만 불륜 사태가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서로 몰랐고 또 알아차리고 이상하게 여긴 소수의 사람들도 덮기에 급급했지,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 깨졌고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고 상황이 가장 비참한 곳으로 치닫는 것을 결국은 보기만 하고 확인만 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제 우리가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답을 성경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 이기원> 어떤 답이었을까요?

◆ 박신진> 저는 담임 목사로서 그 한 두 달 동안 성경을 묵상하면서 아마 한 한 네다섯번 번의 설교를 할 때 정말 혼을 갈아 넣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교회와 제가 함께 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도들도 말씀 안으로 아주 어느 때보다 순진하게 다가왔던 것 같고요. 그래서 어떤 시점부터는 교우들이 그 문제를 솔직하게 열어놓고 대화하고 기도하며 대처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고 충격적인 사건이고 대외적으로도 창피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교회가 오히려 내적으로 회복되고 또 복음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말씀과 기도에 굳게 서 있으니까 한 주 한 주 마치 그 소화전에서 불을 끄듯이 그렇게 문제가 스스로 물러가 버리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이기원> 그 경험은 정말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큰 은혜인 것 같아요. 근데 목사님 용기도 참 대단하시고 아까 그 얘기하셨잖아요. 숨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드러내고 그리고 정직하게 그러니까 우리가 그러잖아요. 돌려서 말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씀하신 그런 용기 참 그런 게 정말 대단하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잘 마무리가 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 박신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다 공개할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아주 난감하고 이거 정말 교회가 무너지지 않겠나 이런 염려를 했는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정직하게 대처하니까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더라고요.

◇ 이기원> '정직함이 거룩함'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달아지네요. 저도 제가 예전에 사역하던 어떤 지역에서 목회자 한 분이 삶을 스스로 마감하셨어요. 근데 참 부끄럽죠. 그 지역 지방 뉴스에 나가고 특히 그런 게 있잖아요. 일반 아무개 씨라고 하면 되는데 거기에 꼭 신분을 밝혀요. 그래서 정말 우리 교계가 너무 난감했는데 저희도 그거를 숨기려고 하지 않고 그 당시 지방에 있던 그래서 같이 그렇게 하면서 잘 대처해 나간 적이 있는데 목사님도 아무튼 정말 존경스럽고 그런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런 일로 인해서 교회가 더 단단해지고 오히려 우리의 아픔을 더 성숙케 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목사님의 목회가 우리가 본받아야 될 우리 지역 목회자들이 봐야 될 샘플이 아닐까 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신진> 예. 아주 참 참담한 일이었는데 그걸 우리가 집중해서 말씀과 기도로 극복해 나가는데 그러는 가운데 저도 많이 참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체험했고 우리 장로님들이나 교우들도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그렇습니다. 그 삼척 제일감리교회는 지역에서 10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가진 교회이기도 합니다. 목사님께서 보시기에 지역 교회가 오늘 이 시대에 감당해야 될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삼척제일교회 삼척해변 환경미화 활동.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삼척제일교회 삼척해변 환경미화 활동. 삼척제일감리교회 제공◆ 박신진> 예. 우리 교회가 이제 100년이 넘은 교회로 지역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교회가 안으로 더 커지고 복음 안에 든든히 서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저희 교회도 연회 강원도의 한 7천 여 개의 감리교회에서 전도상을 탄 적도 있고요. 내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만 지역교회는 지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사회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교회가 어떤 대외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쪽에서 이런 얘기를 하려면 저쪽에서 맞고요. 그러나 연합회가 때로 지역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원전 문제가 터졌을 때 뭐 등등의 이런 일이 있을 때 사실은 선언적인 의미를 가진 그런 발표를 선언을 해야 되지 않았을까 그때 그런 관심을 가지고 토론도 해 봤지만 결국 거기에까지 이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역의 환경과 미래 또 산업 발전을 위한 논의를 계획하고 교회, 연합회 차원에서 선언했으면 좋았겠는데 또 독재적인 정부가 나와 민족의 미래를 어렵게 끌고 갈 때 연합회는 적절하게 하게 발언하고 대처함이 필요했다고 그렇게 보는데요. 그때마다 당장 부딪힐 사람들의 염려와 반대에 파묻혀 버리곤 했어요. 좀 아쉽습니다. 중요할 때마다 교회가 너무 우향우하는 것은 저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지역사회의 중요한 시점에 교회는 성숙하고 지혜로운 대안을 말하는 균형 잡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이기원> 그러니까 지역사회에 어떤 현안이 있거나 국가적인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교회가 그 대변인 역할을 좀 하자…

◆ 박신진> 뭐, 너무 나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점잖게 어떤 중심을 잡아주면 균형 있게 얘기할 필요는 있지 않겠나.

◇ 이기원> 그렇죠. 그러니까 개인 구원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사회 구원 그 다음에 교회의 공공성을 좀 살려서 같이 좀 나아가자라는…

◆ 박신진> 그런 부분이 너무 좀 부족하지 않나. 저의 목회를 돌아볼 때 아쉬웠던 점 중에 하나입니다.

◇ 이기원> 네. 그렇군요. 목사님께서는 교회 안의 사역뿐 아니라 그 지역 연합과 여러 공적 역할도 지금 말씀 함께 해 오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를 섬기면서 특별히 마음에 드셨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 박신진> 제가 나름 열심을 내고 해보려고 했던 것 중에 또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지역 목사님들과 함께 초교파적으로 인문학 서적 읽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이기원> 독서 토론 같은 것.

◆ 박신진> 그렇죠. 매주 모여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책 읽은 것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하는 거였는데요. 그중에서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이나 칼뱅의 기독교 강요도 있었습니다. 엄청난 부피에 읽기 어려운 책이죠. 목사님도 아시지만 혼자 읽으라면 못 읽었겠지만 나누어서 함께 읽으니까 읽기가 가능하더라고요. 장로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요한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읽을 엄두도 못 내다가 그때 함께 읽었는데 정말 칼뱅은 생각과 사상에 열려 있는 큰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걸 장로교 목사, 침례교 목사 성결교 목사 같이 읽으니까 특히 장로교회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한때는 다른 모임과 연합하여 며칠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또 서울로 독서 모임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 이기원> 서울로도 다녀오셨어요?

◆ 박신진> 여러 사정으로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 이기원> 우리 평신도 성도들은 잘 이해 못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목사님은 지금 감리교회거든요. 감리교회는 신학적 기반이 웨슬리인데 칼뱅 그러니까 전혀 다른 쪽 부류의 신학 책을 읽고 하셨다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열린 마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인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 박신진> 네. 그 인문학 고전 독서가 참 유익하다는 걸 느꼈는데요. 서로 다른 교파와 생각들을 내놓고 대화하면서 공통 분모를 찾아가는데 그만한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후배들이 이 일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기원> 독서 토론을 하셨다고 하니까 (질문)드리고 싶은데 독서 토론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또 어떤 건가 한번 질문드리고 싶네요.

◆ 박신진> 아까 그 기독교 강요. 기독교 강요 아주 내용이 알차고 칼뱅이 그러니까 꽉 닫혀 있는 막힌 사람 아주 답답한 사람이 아니고 굉장히 개방돼 있고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그런 인상을 받았고요. 또 어거스틴 책도 읽었고 또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도신경 그런 것도 읽었는데 좀 어려웠죠. 대화하면서 우리 목사들끼리 서로 차이 나는 점들을, 공통 분모를 찾아간다고 할까요? 그만한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이기원> 듣고 있는 젊은 목회자인 저도 이 도전을 받고 함께하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하셨던 일들이 너무 귀한 일 같습니다. 목사님 이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년 정도 남았는데요. 자연스럽게 이제 정리에 대한 시간을 보내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가장 먼저 정리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고 마무리하고 싶은 사역이나 남겨두고 싶은 사역의 열매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박신진> 가장 정리를 해야 되겠다 생각하는 게 책입니다. 하하(웃음). 제 책을 아주 거의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성경책만 가지고 은퇴를 하려고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제가 목회에 남긴다고 할까 이어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기독교회가 우리 감리교회도 마찬가지고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너무 경직되어 가고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어떤 그런 활력 있는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이제 소위 좌,우. 교회 안에 있는 보수, 진보의 대립 그리고 복음주의와 애큐메니컬리즘이라고 말하는 선교 이것과의 어떤 대립 이런 것들이 대화가 없는 채 서로 정죄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저는 부족하지만 균형이 있는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균형이 있는 목회를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인들이 때로는 그렇게 언뜻 듣고 싶어 하지 않은 메시지도 전한 적도 있고요. 그런 나름의 어떤 안타까움을 가지고 노력을 해왔는데 목사님들 또 교우들께서 교회가 그렇게 균형 있는 사역과 방향을 지향할 수 있도록 그런 데 염두를,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균형 있는 목회 궁금하네요. 아까 성도들이 듣고 싶지 않은 설교 주제도 하셨다고 했는데 혹시 그게 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혹시?

◆ 박신진> 아주 극우적인, 보수적인 그런 분들이 삼척에도 계시고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들이 서울에 광화문에 차를 동원해서 가고 하는 데 앞장서고 이런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이 한때는 삼척 제일교회가 빨갱이냐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그렇게 있어서 제가 설교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대화를 해보니까 복음은 동일하고 그리고 복음 안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는데 다만 그것이 어떤 우리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 교회의 실천에서 어떻게 실행할 것이냐 이런 데 대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뿐이다 이런 걸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보수, 진보라는 게 보수는 천천히 개혁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빨리 개혁하자는 것인데 사실은 같은 거거든요. 같은 동기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방식과 속도가 좀 다른 것이라는 거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균형 있는 목회와 균형 있는 사회적 책임을 교회가 감당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기원> 네. 좋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보수는 천천히 개혁하고 진보는 빨리 개혁하니까 두 개가 균형을 맞춰서.

◆ 박신진> 결국은 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어요.

◇ 이기원> 맞습니다. 아직 논의 중이시겠지만 내년 은퇴까지 남은 일정 기간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지 한번 짧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박신진> 지금 이제 그런 논의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장로님들과 연초에 들어서면서 의논하기는 은퇴를 앞에 두고 안식년을 한 반 년 가지면서 결정된 후임 목사님과 그걸 같이 동사 목회를 한 뒤에 넘겨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식년을 받아서 은퇴할 때까지 인수인계를 잘 하고 또 45년 목회에 도움을 주신 분들도 돌아보기도 하려고 그러고요. 그동안 또 시간 때문에 돌아보지 못한 선교지도 좀 돌아보면서 마무리하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선교 중에 목사님 가보시고 싶은 곳이나 가려고 계획하신 곳은 또 혹시 어딘가요?

◆ 박신진> 제 친구 중에 프랑스에서 오랜 목회를 하다가 국내에 들어와서 쉰 뒤에 다시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라는 곳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국내에 들어올 때 내가 아주 밥도 많이 사주고 많이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코트디부아르에 가고 싶습니다.

◇ 이기원> 청구서 가지고 가야겠는데요? 하하(웃음). 목회 인생을 돌아볼 때 이 한 가지는 꼭 잘했다 혹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붙드신 은혜였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박신진> 글쎄 뭐가 있을까요? 저는 목회를 시작한 이듬해에 아내를 만나서 43년을 살아오고 있는데 아내 만난 게 잘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요. MBTI 요즘 유행하는데 네 가지가 다 다릅니다. 이렇게 다 다른 사람도 드물다고 그러네요. 그래서 신혼 때는 이거 맞춰 가느라고 아주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아내가 참아주어서 오늘에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 이기원> 사모님 만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다.

◆ 박신진> 또 1남 2녀 자녀들을 통해서 아주 기쁨이 있었고 외손 자녀가 4명이 생겼는데요. 그 아이들을 주심에 제가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매일 자녀, 손자녀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자녀분은 몇 분이세요?

◆ 박신진> 셋입니다. 딸이 둘이고 아들이 하나입니다.

◇ 이기원> 가족 사랑으로 끝이 나네요. 그럼 목사님 오랫동안 함께한 우리 성도들과 지역의 후배 목회자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특히 고향이 삼척이시니까 20여 년 목회 삼척에서 하셨으니까 삼척에서 혹시 또 목회하는 우리 후배 목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 박신진> 예. 제가 예전에 3~40대 때에 모셨던 원로 목사님이 계신데 감리교단의 임순목 감독님. 돌아가신 원로 감독님이신데 10여 년을 은퇴하신 후에 제가 그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모셨습니다. 그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는 문병을 간 우리 부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박 목사, 너무 힘들여 목회하지 마라. 놀면서 재미있게 목회해. 친구들과 잘 지내시오" 이 말을 저도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힘들여 목회하지 말라는 것은 목회도 삶이니까 즐겁게 평안하게 리듬감 있게 하라는 것이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잘 지내시오'는 동료들과의 사귐과 동행이 중요하다. 혼자만 가면 무슨 재미냐 그런 말씀 아니겠습니까? 정말 목회를 너무나 아름답게 하셨던 그 원로 목사님께서 주신 말씀인데 나도 후배들에게 너무 힘들면 목회하지 말아라 놀면서 친구들 돌아보면서 재미있게 목회해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기원> 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 목회하지 말라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 목회자들은 가정이 있잖아요. 가족도 돌보고 말씀하신 친구, 선후배 관계도 돌아보고 또 그런 만남 속에서 우리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 박신진>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께 맡기면 되지 않겠나 싶어요.

◇ 이기원>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즐거운 목회 행복한 목회인데 너무 목회만 바라봐서 가정 잃고 사모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이런 일이 없도록. 너무 잘 해오신 것 같습니다. 신청 찬양 한 곡 부탁드리겠고요. 왜 이 곡을 선택하셨는지 이유도 한번 같이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박신진> 예. 같이 나누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요. 마커스 워십의 '삶의 작은 일에도(소원)' 라는 찬양입니다. 이 노래를 제 전화기 컬러링으로 넣어 놨는데요. '높은 산이 되기보다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그 가사가 너무 좋아요.

◇ 이기원> 알겠습니다. 원곡이 제가 알기로는 한웅재 씨 곡으로 알고 있는데 삶의 작은 일에도. 그 가사가 시 같잖아요. 그리고 정말 성경 말씀 같은 가사예요. 목사님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앞둔 목사님께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말씀해 주시고요. 청취자 여러분께 축복의 인사 말씀, 끝인사도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삼척제일감리교회 박신진 담임목사. 최진성 아나운서삼척제일감리교회 박신진 담임목사. 최진성 아나운서◆ 박신진> 같이 나누고 싶은 말씀 베드로전서 5장 7절을 떠올려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영어로 염려를 맡기라 하는 캐스트(cast)라는 말을 쓰고요. 돌보심이라 하는 케어(care)입니다. 염려를 내던져 버리면 하나님이 케어해 주신다 그런 말씀인데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 하루하루가 염려를 맡기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함으로써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기원> 네. 은퇴를 1년 앞둔 우리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는데 조금은 짓궂은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다시 목회하신다면 45년 전으로 돌아와서 다시 목회하신다면 삼척으로 다시 오시겠습니까?

◆ 박신진> 기필코 다시 오게 돼요. 그리고 갑절로 열심히 힘이 다하는 데까지 교인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 이기원> 네. 목사님이 생각하는 목회 철학 목회는 무엇이다 말씀해주신다면요?

◆ 박신진> 저희 아내와 은퇴 준비하는 얘기들을 하면서 거듭거듭 얘기하고 또 올해의 우리 교회 마지막 표어로 제 목회의 마지막 표어로 세운 것이 서로 사랑하는 교회인데요. 정말 좀 더 사랑했으면 좋았겠다. 또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교우들을 더욱더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런 마음입니다.

◇ 이기원> 네. 아까 우리 마지막 인사드렸는데 한 번 더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누구한테 하냐면 지금까지 45년 목회의 동반자로 함께해 주신 사모님께도 우리 목사님 한번 끝인사 마지막 인사 사랑 고백 한번 해 주시면 어떨까요?

◆ 박신진>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맙고 또 목회를 나보다 더 열심히 해줘서 큰 힘이 되었어. 사랑해.

◇ 이기원> 네 목사님의 사랑 고백 이거 사모님이 꼭 들으시겠죠?

◆ 박신진> 예. 들을 것 같아요.

◇ 이기원> 마지막 멘트만 꼭 녹음해 가지고 전화 벨로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우리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특히 목사님의 45년 목회 여정을 그렇게 나눠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삼척 제일교회 박신지 목사님과 함께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 박신진> 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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