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인규 권사, 순교자 넘어 독립유공도 인정 받아야"

"고 최인규 권사, 순교자 넘어 독립유공도 인정 받아야"

[미션인터뷰]황용규 목사(동해천곡감리교회)
10여년 전 고 최인규 권사 알게 돼
이후 자료수집 활동과 함께 소개 시작
매년 고 최인규 권사 순교기념예배 드려
순교자 넘어 독립유공자 추서 위해 노력
"신앙 뿐 아니라 역사,민족의식 심고 싶어"

■ 방송 : 강원영동CBS <미션인터뷰>(주일 10:05~10:30)
■ 채널 : 표준 FM 91.5MHz
■ 진행 : 최진성 아나운서
■ 출연 : 황용규 목사(동해천곡감리교회)

동해천곡감리교회 황용규 담임목사. 최진성 아나운서

 

◇ 최진성> 우리 강원동해안 지역에 참 귀한 순교자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일제의 어떠한 핍박에도 또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과 신의를 지켜갔던 분 또한 뒤늦게 신앙생활을 하게 됐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던 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님이 계십니다. 고 최인규 권사님이 계셨던 동해 천곡감리교회에서 열정적으로 최인규 권사님의 발자취를 전하고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오늘 미션 인터뷰는 동해 천곡감리교회 황용규 담임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 황용규> 안녕하십니까. 저는 동해 천곡 감리교회 담임 목사 황용규입니다.

◇ 최진성> 반갑습니다. 동해 천곡감리교회 부임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 황용규> 10월 23일이 만 7년 됐습니다.

◇ 최진성> 요즘 동해 천곡교회 분위기는 어떤가요.

◆ 황용규> 저희 교회는 지난 9월 26일에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100주년 기념 예배도 드렸고 또 교회 앞에 100주년 기념비도 조그마하게 세우고 아주 굉장히 기쁜 일이 많은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도 아주 많이 기뻐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 최진성> 오랜 역사 속에서 또 그 역사 안에 귀한 인물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순국 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님 동해 천곡교회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분이시죠.

순국 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 최진성 아나운서

 

◆ 황용규> 예. 우리 최인규 권사님은 1881년 11월 5일에 동해 송정동이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나셔서 18살에 홍은선이라고 하는 분하고 결혼을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결혼생활 20년 하시고 사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최인규 권사님이 38살에 혼자 되셨고 또 따님 하나가 있었는데 그 따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최인규 권사님이 아빠로서 여러 가지 인생의 어떤 그 허탈함 허무함 그런 것 때문에 술로 세월을 보내셨기 때문에 그 따님은 친척들에 의해서 길러졌다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인규라고 하는 그 분을 부평제일교회 김기정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전도를 해서 그분이 나이 40세에 예수를 처음 믿게 되었다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시고 한 4년쯤 돼서 김기정 목사님에 의해서 1921년에 예수를 믿으시고 1925년에 당시에 학습 제도가 있고 세례 제도가 있을 때 학습 세례를 받으셨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그 분이 1932년에 북평제일교회에서 속장이 되시고 또 권사의 직분을 받아서 아주 열심히 잘 섬기셨다고 합니다. 그때 천곡교회에 권화선 속장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여자분 혼자서 북평 제일교회를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권하선 속장님이 최인규 권사님에게 우리 교회에 오셔서 교회를 돌봐주시고 또 교회 예배당을 지어 달라고 그래서 이 동네분들하고 1932년에 권사가 되시고 1933년에 권하선 속장님의 권면으로 이곳에 오셔서 그 당시에 여덟 평짜리 예배당을 지으셨다고 그래요. 최인규 권사님 1933년 11월 2~3일쯤에 이곳에 오셔서 예배도 인도하시고 평신도 사역을 시작하신 거죠. 그렇게 하시다가 1935년 그러니까 이 교회에 오셔서 한 2년 지나서 당신의 논밭을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 밭 1천3백69평 논 539평을 우리 천곡교회에다가 하나님 앞에 봉헌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 본부 옛날에는 총리원이라고 그랬는데요. 1937년 10월에 감리교 본부에서 은제 상패를 드렸다고 그럽니다. 근데 우리 최인규 권사님이 가족들이 안 계시다 보니까 그것이 관리되지 않고 보존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당신 재산을 바치고 또 교회를 섬기시다가 1940년 5월에 신사참배, 동방요배,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 이 네 가지를 다 거부하셔서 결국은 삼척 경찰서로 검속되셨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옥고를 치르시다가 결국 순교하시는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최진성> 정말 일제강점기 당시에 얼마나 괴롭힘을 많이 당했습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강단 있게 대응을 하셨다고 하는데 당당하고 또 기세 넘치는 권사님의 모습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 황용규> 제가 최인규 권사님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보니까 신사 참배가 언제부터 이게 강화되었는지 찾아보다 보니까 1940년 그러니까 그렇게 국가 의례라고 하는 변명을 하고 뭐 이렇게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서 굴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수호자로서 교회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고자 하는 그런 신앙인으로서 최인규 권사님이 앞장서셨다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1940년 5월에 삼척경찰서로 검속되셔가지고 그 경찰서장이 최인규 권사님에게 창피를 주려고 인분지게를 지게 하고 삼척 읍내에 골목 골목을 다니면서 '나 최인규는 신사 참배, 동방요배,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를 안 하기 때문에 내가 이런 벌을 받습니다' 그렇게 부끄럽고 창피하게 하려고 그랬는데 도리어 최인규 권사님은 당당하게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라고 그렇게 여기고 외치고 다니셨다 라고 하는 그런 일화가 있고요 . 또 삼척 경찰서에 검속되셨을 때에 북평제일교에서 함께 신앙생활하셨던 차국성이라고 하는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최인규 권사님이 천곡교회로 오셨을 때 그분은 울진으로 가서 신앙생활하고 교회를 돌보고 섬기셨다고 그럽니다. 근데 그분이 그 소식을 듣고 삼척 경찰서에 와 가지고 일본 경찰서장에게 "이 최인규라고 하는 친구는 예수 믿기 전에 아주 술로 세월을 보냈고 아내를 잃고 이런 신사참배 이런 문제들 때문에 아마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그런 친구니까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놔달라" 고 그렇게 요청을 했을 때에 그 삼척경찰서장이 그랬답니다. 차국성이라고 하는 그 친구에게 "당신 예수 믿는 사람 맞냐" 고 "이 최인규 이 사람 친구 맞냐" 고 그렇다 그러니깐 그 일본 경찰서장이 그랬답니다. 차국성이라고 하는 그 권사님에게 "당신도 예수를 믿으려면 똑바로 믿고 이 최인규 권사처럼 최인규처럼 믿으라" 하고 그런 아주 일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그런 그 신앙의 절개를 보여주신 그런 분이 바로 최인규 권사님이십니다.

◇ 최진성> 이렇게 목사님의 이야기로 설명해 주실 정도면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셨겠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최인규 간사님에 대한 연구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시게 된 건지.

◆ 황용규> 제가 이 천곡교회에 오기 전에 북평제일교회 최인규 권사님이 처음 신앙생활을 하셨던 그 교회에 담임을 한 7년 했었습니다. 그 교회가 아마 올해 108년인가 그렇게 됐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 교회에 가서 그 교회의 역사를 이렇게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더듬어보고 찾고 연구하다 보니까 그 교회에도 김한달 전도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 영동 지역에 어떻게 교회를 세웠는가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도 참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회 출신인 최인규 권사님이 순국순교자라고 하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 그때부터 나름대로 최인규 권사님에 대한 책을 보고 또 이 천곡교회 와서 선임 장로님이신 김형걸 장로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제가 달라 그래서 그것으로 순례 오시는 순례객들에게 순례팀들에게 소개를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를 제가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죠.

순국 순교자 고 최인규권사. 최진성 아나운서

 

◇ 최진성> 여기에 다녀가신 분들이 한 어느 정도 되셨어요. 지금까지.

◆ 황용규> 2018부터 2021년 올해까지 4년 동안에 코로나 때문에도 어려웠지만 75개팀 정도 그리고 한 2천 명 정도로 보고있습니다.

◇ 최진성> 기억 속에 가장 멀리서 온 팀 기억나는 팀들이 있으세요.

◆ 황용규> 제가 오는 분들은 다 기록을 남겨놔요. 제일 멀리는 전라남도 광양, 대구, 강화 그 다음에 가까이는 우리 지역에 있는 교회들하고 아마 전국 팔도에서 거의 다 다녀가셨습니다. 그분들이 사진도 올리고 글도 올리고 그래서 가끔 보면 이제 인터넷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새 우리 교인들한테 그런 우스갯 소리 합니다. "이제 나 어디가 숨을 수도 없다" 고 하하(웃음). 진짜 멀리서는 멕시코에서도 왔다 갔습니다.

◇ 최진성> 물론 들으시는 분들은 또 듣는 보람도 있겠지만 그걸 전하시는 입장에서의 뿌듯함도 좀 있으실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전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순국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에 대해 소개하는 황용규 목사. 최진성 아나운서

 

◆ 황용규> 소개할 때마다 뿌듯함 그리고 책임감, 제가 목회자로서 복음 수호를 위해서 최인규 권사님과 같은 그런 뒤를 따라야 되겠다 라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듣는 분들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제가 전해드리고 그랬을 때 어느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교인들하고 왔다가 맨 처음에 목사님들끼리 왔다가 "너무 은혜가 된다" 교회 교인들 또 데리고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일일 부흥회하는 것보다 더 은혜롭습니다. 더 많은 신앙의 도전을 받고 갑니다. 감사하다" 라고 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 참 내가 이 일을 더 열심히 책임감 있게 그렇게 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늘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 최진성> 매년 순국순교자의 고 최인규 권사님을 기억하는 순교 기념 예배를 지금 드리고 있다고요?

◆ 황용규> 네.

◇ 최진성> 동해 북평 제일교회도 나오고 동해 천곡 감리교회도 돼 있고 삼척 제일교회에서도 고 최인규 권사님을 같이 기념하더라고요.

◆ 황용규> 북평제일교회는 최인규 선생님 최초로 신앙생활을 하신 곳이고 천곡교회는 순교하신 곳인데 최인규 권사님이 옥중 순교를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1940년 5월에 검속되어 있어서 1942년 12월 16일 오후 2시에 순교하셨기 때문에 그 당시엔 아직 해방이 안 됐을 때입니다. 근데 이제 해방되고 나서 이 교회 출신인 청년 김창주라고 하는 분과 최인규 권사 친척 분하고 자전거로 동해에서 대전 형무소까지 가서 그 최인규 권사님 유해를 모시고 왔어요. 모시고 온 후 어디 둘 데 없기 때문에 공동묘지에다가 두었다고 그래요. 김창주라고 하는 분이 아주 열정이 대단한 분이죠. 여기서 대전까지 자전거 타고 갈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지만 그 열정으로 우리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교파를 초월해서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순교자가 계신데 이분 유해를 모셔왔는데 내가 가서 모셔왔는데 이분을 어디다 모셔야 될 거 아니냐"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여기 천곡동이 삼척군 북평읍이었습니다. 당시 천곡교회를 비롯한 몇몇 교회들이 폐쇄명령을 받아가지고 교회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교회도 없고 뭐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그렇게 주선을 해가지고 삼척 제일교회 교정 앞에다가 최인규 권사님 유해를 묻고 그리고 거기다가 순교비를 세웠기 때문에 그래서 최인규 권사님 순교비를 세울 때가 1936년, 그렇게 세웠다가 삼척지역이 그 당시에 강릉 지방 삼척구역이었는데 그 삼척 구역의 일곱 개 교회가 모여서 그 기념비를 세웠다 그래요. 그래서 1946년 3월 15일에 그것이 섰다가 1986년에 8월에 그 유해를 우리 천곡교회를 지으면서 모셔왔어요. 그러니까 삼척 제일교회는 1946년부터 1986년까지 40년 동안 최인규 권사님 유해를 모셨던 교회이기 때문에 북평 제일교회, 천곡교회, 삼척 제일교회 이 세 교회는 이 순교자 기념 예배를 드리고 할 때 세 교회 담임 목사님하고 세 교회 선임 장로님 등 해서 순교 사업위원회로 그렇게 모이고 있습니다.

◇ 최진성> 그리고 그동안 교회 안에서는 많은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알려졌겠지만 동해 시민과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분일 수도 있겠지만 또 일제강점기 시대에 또 최인규 권사님의 행적들 또 그 일들을 돌아봤을 때 독립 유공자로의 지정 이런 부분들에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노력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신다면?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동해삼척지방회 주관으로 매년 순교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최진성 아나운서

 

◆ 황용규> 제가 오기 전에도 그런 노력들이 몇 차례 있었다고 우리 김형걸 장로님이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여러 가지 구비 조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이분에 대한 자료도 있어야 되고 저희가 2019년에 기미독립 100주년 되던 그 해에 다시 최인규 권사님에 대한 독립 유공자에 대한 글을 보훈처에 추서를 올렸어요. 보훈처에서 답이 오기를 최인규 권사님은 독립운동, 3.1 만세 운동을 주로 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것만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너무 약하다 라고 해서 또 다시 보류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런 부분도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사실 최인규 권사님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니까 우리 이 지역에 3.1 운동을 주도했고 또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이수정 선생님이라고 하는 분하고 개인적 교류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들을 더 찾아서 발굴해서 다시 한 번 최인규 권사님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그래서 독립 유공자 이런 부분에도 우리가 한 번 좀 더 힘 써보려고 그렇게 하고 있고요. 저희가 계속 이렇게 하면서 제가 동해시에도 시장님이나 또 시의장이나 뭐 시의원 도의원 이런 분들에게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계속 하다 보니까 동해시에서 지금 도의원으로 일하시는 어떤 분이 그런 부분에 많이 관심을 가지시고 당신이 한 번 동해시와 또 강원도와 합쳐서 어떤 좋은 결과를 얻어보겠다 라고 하는 그런 얘기를 하셔서 상당히 고무적인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루트를 좀 찾으면서 어떻든 그런 부분에서도 최인규 권사님이 그냥 교회 안에서만 정말 순교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또 순국적인 어떤 그런 차원에서도 소개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 최진성> 해야 될 일이 더 많아지셨습니다. 더 많은 자료들을 찾고 또 연결하고 하는 작업들을 하셔야 될 텐데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황용규> 감사합니다.

◇ 최진성> 끝으로 우리 지역민들에게 순국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님과 관련해서 한 말씀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황용규> 제가 우리 교인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나 때' 라고 하는 얘기를 제일 싫어한다고, 얘기하면 꼰대라고 그렇게 받아친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목회자로서 또 순국순교자 최인규 권사님에 대한 얘기를 소개하는 신앙인으로서 그런 얘기를 우리 교인들에게 했습니다. 물론 다 나이 많으신 연세 많으신 분들이지만 '나 때' 를 싫어하는 민족은 망한다 라고. 왜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때부터 시작했느냐? 창세기부터 시작했다고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 아브라함을 택하셨다고 하는 것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우리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 그들은 '나 때' 가 아버지, 할아버지 때가 아니라 창조 때부터라고. 그렇게 하는 민족은 하나님 복 주시는 거라고. 그래서 나 때를 싫어하는 민족은 망한다 라고 제가 그렇게까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도 민족의 역사를 아는 것 민족의 아픔을 아는 것 정말로 나 때가 아니라 우리 조상 때에 우리 민족이 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말씀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규례와 계명인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들어야 되고 듣고자 해야 되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어떤 역사의식 민족의식 이런 의식들이 다시 살아나야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전 이제 그런 마음에서도 어떻든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도 최인규 권사님에 대해서 과거에 일제 때에 우리 민족의 어떤 아픔의 역사가 있었는가 그것을 항거하기 위해서 정말로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고 싸우셨던 분이 계셨다고 하는 것 일반적으로 보면 그냥 시골 아저씨에요. 시골 할아버지에요. 그분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하는 것 그분보다 우리가 지금 시대적으로 보면 훨씬 발전됐고 발달됐고 잘났다라고 참 뽐낼 만한 그런 역사를 이루었다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분들이 이뤄온 역사보다 더 뽐낼 만큼 그런 어떤 역사 의식이나 민족의식이나 신앙 의식이나 이런 것들을 심어주는 데도 제가 작은 한 부분을 좀 감당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사명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황용규 목사는 "최인규 권사님이 순국순교자를 넘어 독립유공자로도 한층 더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찾고 발굴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진성> 역사라는 게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그냥 덮여만 있다면 그것이 역사인 줄을 모르고 지나갈 텐데 발견하고 밝히고 연구하고 그것을 널리 전할 때 역사로서의 가치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순국 순교자 고 최인규 권사님. 순교자로서의 그 모습들도 많이 알려졌지만 더 나아가서는 정말 독립 유공자로의 지정도 기대하면서 우리 지역의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그런 분이 되셨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열심히 수고를 다 하고 계시는 동해 천곡감리교회 황용규 목사님 앞으로도 그 노력 이어질 수 있도록 응원을 드리고요. 오늘 귀한 시간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 황용규>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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